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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 1월 8일, 사쿠라다문에서 던진 질문
의거가 ‘성공’으로만 판단된다면, 역사의 절반은 지워질 것입니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궁성 사쿠라다문 앞에서 던진 수류탄은 황제를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폭음은 제국의 심장에 균열을 내고, 세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식민의 시대는 정당한가? 💥

한눈에 보기
· 사건: 1932.01.08 사쿠라다문 의거(일왕 향해 투탄) → 체포·사형(1932.10.10)
· 맥락: 한인애국단, 연속 행동(후속의 윤봉길 의거 4월 29일)
· 함께 읽기: 윤봉길 · 신채호 ·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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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였나, 왜 그날이었나
막노동으로 전전하던 청년은 차별과 멸시를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상하이에서 김구와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표적은 ‘제국의 상징’ 자체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무차별이 아니라 상징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사건의 구조—표적·동선·의미
- 표적: 권력의 최정점(군 통수권과 상징 권력)
- 동선: 의장행렬·관병식 후 복귀 루트의 틈
- 의미: 제국의 무오류 서사에 균열—‘황제도 인간’이라는 사실의 노출
폭발의 물리적 효과보다 더 큰 파장은 ‘질문’이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제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폭력으로 세운 권력은 정당한가?” 체포와 재판, 사형으로 이어진 절차는 제국의 공포와 불안을 보여줍니다.
연속성—윤봉길로 이어진 파동
이봉창의 결단은 윤봉길(4월 29일)로 이어지는 연속 행동의 문을 열었습니다. 둘의 의거는 중국 국민정부가 임시정부를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독립운동은 ‘고립된 결의’에서 ‘국제적 연대’로 접속합니다. 효창공원에 함께 잠든 이름들이 이를 증언합니다.
타임라인
- 1901.08.10 출생
- 1932.01.08 사쿠라다문 의거
- 1932.10.10 사형 순국
- 유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합동묘역 안장
오늘의 독서 포인트
성공·실패로만 의거를 재단하면, ‘결심’과 ‘연결’이라는 더 큰 의미가 지워집니다. 그는 일회적 폭발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국제적 파장을 여는 ‘첫 신호’였습니다.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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