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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 의병은 ‘분노’가 아니라 ‘사상’이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허위 — 의병은 ‘분노’가 아니라 ‘사상’이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의병을 떠올리면 흔히 이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분노한 백성, 갑작스러운 봉기, 그리고 패배. 그러나 이 이미지는 의병의 전부가 아닙니다.오늘 소개할 왕산 허위 선생은, 의병을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상과 원칙에 기초한 항전으로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엄격했고, 가장 고집스러웠으며, 그래서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의병장이었습니다. 🇰🇷한눈에 보기· 인물: 허위(許蔿, 1855~1908), 호 왕산· 구분: 유학자 · 의병장 · 13도 창의군 핵심 지도자· 특징: 의병을 ‘도덕적·사상적 전쟁’으로 규정한 인물1) 허위는 왜 ‘의병의 사상가’로 불릴까허위는 전형적인 무장 투사로 출발하지 않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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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 ‘의병은 패배했다’는 말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이강년 — ‘의병은 패배했다’는 말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의병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런 말이 따라옵니다. “용감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 문장은 편리하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의병을 ‘실패한 선택’으로만 남겨두기 때문입니다.오늘 소개할 이강년 선생은 이 문장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패배가 예정된 싸움 속에서도, 의병이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한눈에 보기· 인물: 이강년(李康秊, 1858~1908)· 구분: 제천의병 지도자, 후기 의병장· 핵심: 장기 항전, 지역 연합, 조직적 의병 투쟁1) 나라가 무너지는 속도를 체감한 세대이강년은 조선 말기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였습니다. 개항 이후 조선의 주권은 빠르게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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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 —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무장 독립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김락 —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무장 독립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독립운동사를 떠올리면 흔히 이렇게 구분합니다. “의병 → 3·1운동 → 임시정부 → 독립군.”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깔끔하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는 끈처럼 이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김락 선생이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한눈에 보기· 구분: 의병장 → 독립군 지도자· 특징: 구한말 의병투쟁과 만주 무장독립운동을 잇는 연결고리· 포인트: “의병은 끝났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1) 의병으로 시작된 항일의 길김락 선생은 1873년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그리고 대한제국의 주권이 급속히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세대였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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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칠성 — 이름보다 사상이 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선택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 정칠성 — ‘조용하지만 끝까지’ 여성 독립운동의 한복판을 걸은 사람연말이 되면 마음이 묘해집니다. “올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았나” 같은 질문이 자꾸 떠오르지요. 오늘 소개할 정칠성 선생은, 그런 질문 앞에서 특히 떠올리기 좋은 인물입니다. 화려한 폭발처럼 기억되는 의거가 아니라, 지속과 조직으로 독립운동의 중심을 떠받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자주 불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삶이 작았던 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히 버틴 사람이 많을수록 역사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한눈에 보기· 인물: 정칠성(이명 정금죽) — 여성운동가·사회운동가· 핵심: 근우회(여성 통일전선) 활동, 여성의 경제적 자립·교육·노동 현실을 독립운동과 결합· 포인트: “독립”을 ‘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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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 12월 11일, ‘서간도 시종기’로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의 기록과 버팀목 🏠 메인으로 돌아가기 🗓 기념일 캘린더이은숙 — 12월 11일, ‘서간도 시종기’로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의 기록과 버팀목“나는 동지의 아내였고,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다.” 12월의 차가운 공기를 마주하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동지이자 스스로 한 세대를 기록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은숙 선생입니다. 1979년 12월 11일, 서울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가 견딘 시간은 눈물의 연속이었지만, 기록으로 남긴 신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한 울림을 줍니다. ✍️한눈에 보기오늘의 이유: 12월 11일은 이은숙 선생 서거일입니다.핵심 키워드: 서간도 망명, 신흥무관학교, ‘서간도 시종기’, 여성 독립운동, 생활·자금·연락의 버팀목함께 읽기: 이회영 · 신채호 · 김규식 ·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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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설 — 6·10만세운동을 설계한 ‘보이지 않는 사령탑’ 권오설 — 6·10만세운동을 설계한 ‘보이지 않는 사령탑’거대한 만세의 물결 뒤에는, 전단 한 장·연락 한 번·동선 한 줄을 집요하게 설계한 사람이 있습니다. 1926년 6·10만세운동—학생의 함성과 시민의 떨림을 이끌어낸 권오설 선생입니다. 그는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눈에 보기· 정체성: 농민·노동 조직가 →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 6·10만세운동 설계· 포인트: 학생·노농·종교를 가로지르는 연대 구상, ‘거대한 대중 행동’의 작동법을 설계·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2005 추서)·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윤봉길 · 기념일 캘린더왜 지금, 권오설인가6·10만세운동은 순종 인산일(국장)이라는 거대한 도시 동원을 ‘기회’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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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임시정부의 ‘안살림’, 밤하늘을 가르며 강을 건넌 이름 정정화(본명 정묘희)는 임시정부의 살림과 자금, 연락을 책임지며 ‘연통제’를 통해 여러 차례 국내외를 오가던 실무형 지도자였습니다.영화 같은 잠입, 포로수용소의 고초, 해방 후에도 이어진 봉사—‘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역사를 움직인 분입니다. 정정화 — 임시정부의 ‘안살림’, 밤을 가르며 강을 건넌 이름조명을 독점한 거인들 사이에서, 매번 뒤편에서 등불을 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살림을 책임지고, 군자금과 연락망을 꾸리고, 밤강을 건너 서신과 자금을 품에 안고 움직이던 사람. 정정화 선생의 삶은 ‘최전선’ 대신 ‘지속전’을 택한, 실무형 리더의 표본이었습니다. ✨정체성: 임시정부의 살림·자금·연락을 책임진 실무형 지도자핵심: 연통제(비밀연락망)를 활용한 국내 잠입 다수, 임정 운영의 ‘보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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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 1월 8일, 사쿠라다문에서 던진 질문 이봉창 — 1월 8일, 사쿠라다문에서 던진 질문의거가 ‘성공’으로만 판단된다면, 역사의 절반은 지워질 것입니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궁성 사쿠라다문 앞에서 던진 수류탄은 황제를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폭음은 제국의 심장에 균열을 내고, 세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식민의 시대는 정당한가? 💥한눈에 보기· 사건: 1932.01.08 사쿠라다문 의거(일왕 향해 투탄) → 체포·사형(1932.10.10)· 맥락: 한인애국단, 연속 행동(후속의 윤봉길 의거 4월 29일)· 함께 읽기: 윤봉길 · 신채호 · 이회영왜 그였나, 왜 그날이었나막노동으로 전전하던 청년은 차별과 멸시를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상하이에서 김구와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표적은 ‘제국의 상징’ 자체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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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 12월 18일, 헤이그로 간 이유 이준 — 12월 18일, 헤이그로 간 이유1907년 여름, 대한제국의 주권이 침탈되는 현장을 국제법의 언어로 고발하기 위해 이준·이상설·이위종이 비밀리에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19세기 말 법률가이자 교육가였던 이준의 12월 18일 탄생을 맞아, 그 여정의 의미를 다시 읽습니다. ✉️한눈에 보기· 키워드: 1907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 국제법·외교전, 주권 침탈 고발· 생애: 1859.12.18 출생 → 검사·판사·교육가 → 특사 파견 → 헤이그에서 순국(1907.7.14)·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박열 · 박차정‘을사늑약’ 이후, 국제사회로1905년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되었습니다. 황제 고종은 국제회의에서 그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비밀리에 특사를 보냅니다. 이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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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 12월 10일, 외교의 언어로 독립을 일으키다 김규식 — 12월 10일, 외교의 언어로 독립을 일으키다전쟁은 총으로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약, 성명, 회담, 서한—그 세밀한 문장 사이에서도 역사는 뒤집힙니다. 12월 10일 서거일을 맞아, 외교 현장에서 독립을 밀어 올렸던 우사(尤史) 김규식 선생의 발자취를 차분히 따라가 봅니다. ✍️한눈에 보기· 핵심: 1919년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외교전, 임시정부 요인(외무·학무·부주석)· 오늘의 의미: ‘정의·증거·절차’로 식민지 현실을 세계 기록으로 남긴 사람·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윤봉길 · 기념일 캘린더외교라는 전장: 파리에서 서울까지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뒤, ‘세계의 법정’에서 조선의 주권을 호명하는 일은 누군가의 역할이어야 했습니다. 김규식은 그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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