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설 — 6·10만세운동을 설계한 ‘보이지 않는 사령탑’
거대한 만세의 물결 뒤에는, 전단 한 장·연락 한 번·동선 한 줄을 집요하게 설계한 사람이 있습니다. 1926년 6·10만세운동—학생의 함성과 시민의 떨림을 이끌어낸 권오설 선생입니다. 그는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

· 정체성: 농민·노동 조직가 →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 6·10만세운동 설계
· 포인트: 학생·노농·종교를 가로지르는 연대 구상, ‘거대한 대중 행동’의 작동법을 설계
·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2005 추서)
·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윤봉길 · 기념일 캘린더
왜 지금, 권오설인가
6·10만세운동은 순종 인산일(국장)이라는 거대한 도시 동원을 ‘기회’로 전환한 사건입니다. 권오설은 학생조직·노농단체·종교세력(특히 천도교)까지 잇는 연합 작전을 구상했고, 서울은 학생이, 지방은 장례 행렬에 모인 군중이 각각 중심이 되어 전국적 만세를 일으키자는 분산·동시 행동을 설계했습니다. 만세는 우발이 아니라, 조직된 일상이었습니다.
안동의 청년, 조직가로 서다
경북 안동 출신의 권오설은 청년회·농민조합·노동단체 조직을 통해 현장에 뿌리내린 리더로 자랍니다. ‘풍산소작인회’ 같은 농민 조직은 토지 문제를, 직공조합과 파업 지원은 노동 문제를, 청년·학술 강습은 지역의 문해와 의식을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정치는 구호보다 사람을 세우는 기술에 가까웠습니다—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설계도 ① — 연대의 구조(학생·노농·종교)
6·10은 학생만의 운동도, 노농만의 투쟁도 아니었습니다. 권오설은 학생조직(학술·연구회 네트워크), 노농 조직(노총·농조), 종교세력(천도교)과의 횡단 연대를 구상합니다. 전략은 간명합니다. “서울=학생 중심 대행동 / 지방=군중 결집 만세” 로 역할을 분담하고, 격문·시위시간·합류 지점을 사전에 퍼뜨립니다.
설계도 ② — 메시지와 표적
메시지는 ‘누가, 무엇을, 왜’가 분명해야 합니다. 6·10의 표적은 식민통치의 정당성 자체였습니다. 만세의 문구와 격문은 자주·자치·자치교육 같은 보편 언어로 통일했고, ‘학생’의 도덕적 권위를 전면에 배치하여 시민의 합류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래서 6·10은 도시 전체가 합창하는 만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설계도 ③ — 분산·동시·확산
대규모 시위는 중앙집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권오설의 안에는 분산 출발 → 동시 돌파 → 지역 확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지점이 막히면 다른 지점에서 터지고, 서울에서 시작된 흐름이 곧바로 평양·개성·원산·대구·공주…로 확산되도록 전파 경로를 마련합니다. 이날의 만세는 실제로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민중의 ‘집단 학습 효과’를 남겼습니다.
거사 직전의 좌절, 그러나 지워지지 않은 이름
문제는 ‘너무 잘 조직된 운동’일수록 발각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일제는 사전에 지도부를 대거 검거했고, 권오설 역시 거사 직전 체포됩니다. 그럼에도 시위는 터졌고, 학생과 시민이 연쇄적으로 합류했습니다. 권오설의 이름은 현장 사진에는 드물지만, 설계도에서 선명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를 움직인 사람—그에게 더 큰 존경을 보냅니다.
감옥에서 지켜낸 것들
재판과 옥고는 잔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동지를 보호했고, 조직의 핵심 동선을 지켰습니다. 그의 생은 1930년 차디찬 감옥에서 멈췄지만, ‘연대의 설계’라는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독립국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바쳤고, 6·10만세운동은 국가기념일(6월 10일)로 선포되어 지금의 우리와 연결됐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것(3)
- 연결의 힘 — 다른 조직과 말이 다를 때, 공통의 언어로 묶는 기술
- 분산의 전략 — 한 점이 막히면 다른 점이 연다. 동시·확산 구조의 설계
- 지속의 윤리 — 이름이 남지 않아도, 움직임이 남게 하는 태도
짧은 타임라인
- 1897 경북 안동 출생
- 1922~24 풍산청년회·풍산소작인회 주도,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
- 1925 고려공산청년회 창립 가담(중앙집행·조직 책임)
- 1926 6·10만세운동 설계(학생·노농·종교 연대 구상) → 거사 직전 체포
- 1930 옥중 순국
- 2005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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