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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 12월 19일, 홍커우 공원에서 시작된 파장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 황제 생일을 기념하는식에서 터진 한 번의 폭음은 국제 여론을 뒤흔들고, 임시정부의 존재감을 세계로 드러냈습니다. 그해 겨울인 12월 19일, 윤봉길은 오사카에서 순국합니다. 🕯️

한눈에 보기
· 사건: 1932.4.29 홍커우 공원 의거 → 체포·군법회의·이송, 1932.12.19 순국
· 키워드: 한인애국단, 표적 타격, 국제 여론, 임시정부 지원 확대
· 함께 읽기: 신채호 · 박열 · 박차정 · 이회영
· 사건: 1932.4.29 홍커우 공원 의거 → 체포·군법회의·이송, 1932.12.19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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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2월에 윤봉길을 읽나
12월 19일은 윤봉길의 순국일입니다. 의거 자체는 4월이지만, 그 파장은 그해 겨울까지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국민정부가 임시정부를 본격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고, 독립운동의 외교·군사 기반이 넓어졌습니다. ‘한 번의 결단’이 국제 정치의 지형을 바꾸는 과정을 오늘의 언어로 복기해 봅니다.
의거의 구조 — 표적, 메시지, 파장
윤봉길의 행동은 무차별 폭력이 아니라 표적의 명확성과 정치적 메시지로 설계되었습니다. 군 수뇌부와 식민 권력 핵심을 향한 타격은 사건 직후 국제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중국 지도부가 임시정부를 노골적으로 후원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그 덕분에 독립운동은 ‘고립된 결의’가 아닌 국제적 연대로 접속합니다.
결심 뒤의 생활 — 편지와 준비
윤봉길은 농촌에서의 삶과 종교적 신념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길’을 고민했고, 의거 전 남긴 서신에는 ‘한 몸을 제물로 바친다’는 결연함이 담겨 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그는 임정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행동의 의미를 ‘개인의 분노’가 아니라 공동체의 언어로 번역해 냅니다.
타임라인
- 1908 충남 예산 출생(호: 매헌)
- 1932.04.29 홍커우 공원 의거(체포)
- 1932.05.25 군법회의 사형 선고 → 11월 일본으로 이송
- 1932.12.19 오사카에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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