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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 12월 18일, 헤이그로 간 이유
1907년 여름, 대한제국의 주권이 침탈되는 현장을 국제법의 언어로 고발하기 위해 이준·이상설·이위종이 비밀리에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19세기 말 법률가이자 교육가였던 이준의 12월 18일 탄생을 맞아, 그 여정의 의미를 다시 읽습니다. ✉️

한눈에 보기
· 키워드: 1907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 국제법·외교전, 주권 침탈 고발
· 생애: 1859.12.18 출생 → 검사·판사·교육가 → 특사 파견 → 헤이그에서 순국(1907.7.14)
·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박열 · 박차정
· 키워드: 1907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 국제법·외교전, 주권 침탈 고발
· 생애: 1859.12.18 출생 → 검사·판사·교육가 → 특사 파견 → 헤이그에서 순국(1907.7.14)
·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박열 · 박차정
‘을사늑약’ 이후, 국제사회로
1905년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되었습니다. 황제 고종은 국제회의에서 그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비밀리에 특사를 보냅니다. 이준 일행은 헤이그에 도착하지만 일본 측의 방해로 회의장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시도 자체가 국제 여론전의 포문을 열고, 대한제국의 주권 침탈을 세계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법률가의 언어 — 기록과 증거
이준은 판·검사로서의 경력을 살려 조약의 위법성과 강제성을 조목조목 정리했습니다. 그는 ‘감정’의 언어를 ‘증거’의 언어로 번역했고, 그 기록은 이후 외교·독립운동의 논리적 기반이 됩니다. 헤이그에서의 비보는 오랫동안 ‘비밀 특사’의 상징으로 남아, 오늘의 시민에게 법과 현실을 잇는 책임을 묻습니다.
타임라인
- 1859.12.18 함경도 북청 출생
- 1907.06~07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
- 1907.07.14 헤이그에서 순국
- 귀국 유해 추모·기념관 조성, 관련 기록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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