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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

정칠성 — 이름보다 사상이 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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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칠성 — ‘조용하지만 끝까지’ 여성 독립운동의 한복판을 걸은 사람

연말이 되면 마음이 묘해집니다. “올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았나” 같은 질문이 자꾸 떠오르지요. 오늘 소개할 정칠성 선생은, 그런 질문 앞에서 특히 떠올리기 좋은 인물입니다. 화려한 폭발처럼 기억되는 의거가 아니라, 지속과 조직으로 독립운동의 중심을 떠받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자주 불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삶이 작았던 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히 버틴 사람이 많을수록 역사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

한눈에 보기
· 인물: 정칠성(이명 정금죽) — 여성운동가·사회운동가
· 핵심: 근우회(여성 통일전선) 활동, 여성의 경제적 자립·교육·노동 현실을 독립운동과 결합
· 포인트: “독립”을 ‘국권’만이 아니라 ‘삶의 해방’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 ✍️

1) 정칠성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정칠성 선생은 1897년 대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선택지는 넓지 않았고, ‘배우는 여성’은 더욱 희귀했습니다. 그런데 정칠성은 배움과 사상을 통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려 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방향이 “나 혼자 잘사는 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 길이었다는 점입니다.

선생은 여성 문제를 ‘부차적인 의제’로 밀어두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독립하면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까?” 그는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습니다. 독립 이후에도 여성이, 노동자가, 가난한 사람이 그대로 억압받는다면 그것은 절반의 해방일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관점이 정칠성 선생을 더 특별하게 만듭니다.

2) 근우회 — 여성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

1920년대 후반, 조선 사회는 뜨거웠습니다. 신간회가 결성되며 민족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여성운동 진영도 분열을 넘어 연대를 모색하게 됩니다. 그 상징이 바로 근우회입니다.

근우회는 단순한 “여성 계몽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이 교육, 노동, 빈곤, 인권의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결합해 말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칠성 선생은 그 한복판에서 실무를 맡고 사람을 모으고 목소리를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조직이 굴러가게 만드는 힘은 대개 이런 자리에서 나옵니다.

특히 정칠성 선생은 경제적 자립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여성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당시로서는 꽤 급진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돌아보면, 이 ‘자립’의 언어가 결국 독립운동의 토양을 더 넓혀주었습니다. 독립은 총과 폭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활이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3) “독립운동의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독립운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사건’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려면, 그 이전에 “사람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고, 뜻이 모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칠성 선생의 활동은 바로 그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강연을 조직하고, 글을 쓰고, 모임을 꾸리고, 지역을 다니며 네트워크를 잇는 일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아주 피곤하고, 눈에 잘 띄지 않고, 결과가 늦게 나타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이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당장 박수 받는 자리”보다 “꼭 필요한 자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삶이 더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누구나 멋진 장면을 꿈꿀 수는 있지만, 매일의 현실을 견디며 끝까지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은 아무나 못하거든요. 😌

4) 탄압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생각의 운동’

일제는 조직을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사람을 깨우는 조직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운동·사회운동 역시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정칠성 선생 또한 여러 차례 압박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신념을 어떻게 지키느냐”입니다. 정칠성 선생의 방식은 단단했습니다. 크게 과장하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속 사람을 만나고, 말하고, 기록하고, 연결했습니다. 독립운동이 실제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사람들의 ‘지속’ 덕분입니다.

5) 해방 이후,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기억되지는 않았다

해방이 왔다고 해서 모두가 환영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시대가 갈라지고, 이념이 갈라지고, 사람도 갈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독립운동가는 크게 기려졌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잊혀졌습니다.

정칠성 선생을 오늘 다시 꺼내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일부의 이름’으로만 기억하면, 결국 독립운동의 실제 모습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한 줄기만 있었던 게 아니라, 수많은 방식이 얽혀 만들어낸 큰 흐름이었으니까요.

6) 오늘의 우리에게 남는 메시지

정칠성 선생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독립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 그리고 해방은 혼자만의 자유가 아니라 함께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넓혀주는 선택을 한다면, 그 또한 ‘독립운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믿습니다. 큰 말 대신 작은 행동으로, 그 작은 행동을 끝까지—정칠성 선생이 보여준 길이 바로 그런 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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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이름이 크게 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용히 끝까지 버틴 사람이 많을수록, 독립의 뿌리는 더 깊어집니다. 🇰🇷

※ 이 글은 ‘인물사전’ 맥락에서 정칠성 선생의 활동을 쉽게 풀어 쓴 기록형 글입니다. (연말에 읽기 좋은 인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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