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를 향한 마지막 질주(1926.12.28)
“조선의 심장을 되찾기 위해, 그 심장을 겨냥한다.”
12월이 오면 우리는 한 청년의 결심을 떠올립니다. 폭탄 2개, 자동권총 1정,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각오. 이름은 나석주입니다. 🕯️
· 오늘의 주인공: 나석주 — 조선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 의거(1926.12.28)
· 메시지: 표적의 정확함, 민간 피해 최소화, 책임 있는 결말
· 연결: 박열 · 박차정 · 기념일

왜 지금, 왜 12월에 나석주인가
우리의 달력에서 12월은 유난히 의지와 정리의 계절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를 사람들은 묻습니다. 1926년의 12월에도 한 청년이 같은 질문 끝에 식민 경제 수탈의 본거지를 겨냥했습니다. 표적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당시 조선의 자원·토지를 빨아들이는 두 축이었습니다. 기록을 따라가면, 이것은 ‘무작정의 분노’가 아니라 치밀한 표적 선정과 돌아오지 않을 각오가 만난 행동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1) 청년의 준비 — 연결, 위장, 그리고 되돌아올 수 없는 계획
나석주는 망명지에서 임시정부와 의열 네트워크를 오가며 사람과 자금을 모으고, 작전의 설계를 다듬었습니다. 12월 말, 그는 중국인 노동자로 위장해 인천으로 들어와 서울 시내 동선을 사전 점검합니다. 그에게는 두 개의 폭탄과 자동권총, 그리고 실패하면 끝이라는 시간 감각뿐이었습니다.
‘폭탄 2, 권총 1’—이 간결한 준비물은 그의 계획이 표적 타격 + 돌파 이동 + 최후 선택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해 줍니다. 첫 표적에서 실패하면 곧장 둘째 표적으로 넘어가도록 동선을 짰고, 마지막엔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장비에 포함돼 있었지요.
2)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15분 — 표적과 판단
1926년 12월 28일 오후 2시경, 그는 먼저 조선식산은행 대부계로 들어가 폭탄을 던집니다. 그러나 물기와 노후로 불발. 곧장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으로 이동해 다시 폭탄을 투척하지만, 역시 폭발하지 않습니다. 준비한 도구가 뜻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대부분은 거기서 무너집니다. 나석주는 계획 B로 전환합니다. 권총으로 표적 인원들을 사격하고, 거리로 빠져나오며 추격을 제압합니다. 그는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이 아니라 표적 중심으로 대응하려 애썼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최소한의 최대 효과’를 계산합니다.
황금정 거리(을지로 일대)로 빠져나오는 동안 그는 일본인 경찰의 추격을 저지했고, 포위망이 좁혀오자 자신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사로잡혀 고문과 자백의 무대로 이용되지 않겠다는 결심—의열 투쟁의 윤리와 전술이 마지막 한 발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3) ‘의열’의 윤리 — 무차별이 아닌 표적, 증오가 아닌 책임
그의 기록을 읽을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폭력과 마주합니다. 그러나 나석주의 의거는 민간 피해의 최소화, 식민 권력 핵심 표적 타격, 체포 후 강제 진술 차단이라는 세 원칙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파괴의 기술이 아니라, 저항 윤리의 설계였습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폭력의 기원—식민 통치와 경제 수탈의 구조—을 직시하지 않으면 역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석주는 그 구조의 심장부에, 그 심장에 닿는 정치적 상징성을 겨냥했습니다.
4) 불발의 의미 — 왜 실패한 도구가 기록을 바꾸는가
폭탄이 연달아 불발한 사건은 오히려 그의 의거를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준비된 도구가 뜻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작전은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는 퇴로 대신 다음 목표로의 이동을 택했고, 계획이 어긋난 순간에도 의미의 중심(표적, 메시지, 책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폭발’보다 결정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이후의 독립운동 내부 논쟁—무장 투쟁의 정당성, 표적의 선정, 민간 피해 최소화—을 더 구체적 언어로 끌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의열의 윤리와 전략은 ‘하나의 영웅담’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토론 주제로 남습니다.
5) 오늘, 우리가 읽는 나석주 — 단호함과 섬세함의 공존
나석주를 오늘에 소환하는 까닭은 단지 ‘용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호함과 섬세함의 공존—표적을 정하는 냉정함과, 민간 피해를 피하려는 주저와, 고문으로 동지들이 위험해지지 않게 하려는 책임감—이 한 사람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록을 읽으면 ‘강함’이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의 확대 재생산이 아닙니다. 구조를 겨냥하는 정확함, 동지를 고려하는 책임, 실패했을 때 전환하는 유연함—그 삼박자입니다. 그의 12월은 그런 의미에서 **‘결심의 문장’**으로 남습니다.
타임라인(핵심)
- 1892년: 황해도 재령 출생
- 1920년대 초중반: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의열 계열 가담, 의거 준비
- 1926.12.28: 서울 조선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 의거 → 순국
- 해방 후: 건국훈장 추서, 의거 현장 기념 표석과 추모 사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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