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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집안을 비우고, 다시 사람을 채웠습니다.
교육·군사·공동체, 세 개의 축으로 싸운 지도자—우당 이회영.

1) 시작은 ‘가산 정리’였다
이회영은 먼저 집을 비웠습니다.
토지와 가옥, 살림을 정리해 사람·학교·무기를 위한 자본으로 바꿨습니다.
한꺼번에 불을 지른 게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곳에 나눴습니다.
망명은 도피가 아니라 준비의 1막이었습니다.
2) 신흥무관학교 — 독립운동의 ‘군사대학’
만주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는 임시방편의 훈련장이 아니었습니다.
- 교과의 체계화: 보병·사격·전술·지형·통신 등 실전 과목 중심.
- 사람의 네트워크: 국내외 연락책, 자금·보급 라인이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
- 사상 교육: 단지 싸우는 법이 아니라, 왜 싸우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는 훗날 여러 부대와 전투(봉오동·청산리 등)의 핵심 인력풀이 됩니다.
3) 교육·군정·공동체의 삼각형
우당의 전략은 단순했습니다. **사람(교육)**이 준비되면 **조직(군정)**이 돌아가고, 그 조직을 떠받치는 생활 공동체가 있어야 지속된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세우고, 조직을 만들고, 독립촌을 운영했습니다.
의열의 순간보다 지속의 구조를 더 먼 눈으로 본 것입니다.
4) 11월 17일의 의미
1932년 11월 17일, 이회영은 여순감옥에서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국합니다. 달력의 같은 날짜(11월 17일)는 **‘순국선열의 날’**과 겹칩니다.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정한 그 날에, 책임의 윤리로 삶을 마무리한 지도자를 함께 떠올리는 것은 각별합니다.
5)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우리는 종종 ‘결정적 한 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버티는 능력’을 가진 조직이 바꿉니다. 우당의 기록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사람을 기르고, 연결을 만들고, 생활을 떠받치는 구조를 마련하라. 그게 오래가는 승리의 조건입니다.
타임라인 (핵심만)
- 1910~1911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설립 주도
- 1910s~1920s 교육·군정·공동체 운영, 연해주·만주 전역 연락망
- 1932.11.17 여순감옥에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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