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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하락선생,조용한 포성 속에서 산화한 의병장, 김하락 선생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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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한 의병장의 이름을 부릅니다

강산이 일본군의 총칼 아래 울고 있던 때,
한 사람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낯선 김하락(金河洛) 선생.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용맹하고, 누구보다 조용히 싸운
의병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그의 숨죽인 희생과 조용한 결연함을 기억합니다.


📜 양반가문의 아들, 의병장이 되다

1846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난 김하락 선생.
자(字)는 계삼, 호는 해운당.
그는 이름난 양반가의 자손이었지만,
나라가 무너지던 시대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던 날,
그는 결심합니다.
“이제 총을 들자.”
그리고 고향 의성에서 동생과 함께 의병을 모아
포병 중심의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 검은 구름 아래 터진 포성 - 의병전쟁

김하락 선생이 이끈 의병부대는
이천에서 첫 포성을 울렸습니다.
백현전투.
그곳에서 일본군을 기습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쉬웠겠습니까.
이현전투에서는 눈보라와 탄약 부족으로
부대를 이끌고 후퇴해야 했습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영남지방으로 북상해,
안동, 경주, 영덕 등지에서 의병을 재정비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경주를 포위하려 했던 대규모 작전,
그리고 영덕전투.
모든 것이 그의 인생 마지막 전투가 될 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 강물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다

1896년, 영덕에서의 치열한 전투.
일본군의 총알은 그의 몸을 꿰뚫었습니다.
김하락 선생은 중상을 입은 채,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차라리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왜적에게 욕은 당하지 않겠다.”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피로 물든 몸을 이끌고 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포성을 멈춘 조용한 죽음.
김하락 선생의 의연한 최후였습니다.


📖 전쟁 속에서도 글을 남긴 의병장

전투 속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김하락진중일기』는
그의 치열한 전쟁과 마음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싸우면서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글로 후세에게 전하려 했던 진정한 지식인이자 전사였습니다.


🎖 죽음 후에야 전해진 훈장

그의 죽음 이후,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가는 뒤늦게서야 그의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포병을 이끌었던 지도자이자,
강물 속으로 사라진 숨은 영웅.
그에게 바치는 너무나 늦은 훈장이었습니다.


📌 왜 우리는 김하락을 기억해야 할까요?

  • 그는 보이지 않는 의병 전쟁의 중심에서 싸운 인물이었습니다.
  • 화려한 구호 대신, 침묵 속 결연한 항전으로 일제를 향해 총포를 겨눈 사람입니다.
  • 전투와 문장을 함께 남긴 **무인(武人)이자 문인(文人)**이었습니다.
  • 영덕전투에서 강으로 걸어가며
    “죽을지언정 치욕은 당하지 않겠다”고 한 그 결연함.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를 되묻습니다.

🙏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 김하락 선생의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보기
  • SNS나 블로그에 그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 가족들과 함께 의병장 기념관이나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보기
  • 독립운동사를 새롭게 공부해 보기

✍️ 마무리하며…

세상은 소리 지르는 영웅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말 없이 끝까지 버틴 영웅을 기록합니다.

김하락.
그는 외로운 포병장으로,
그림자 속에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진짜 영웅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속삭여보세요.

“김하락 선생,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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