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의 서거일을 맞아 뜨거운 조국애를 되새기다

🕯️ 오늘은 의병장 민종식 선생의 서거일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다.”
이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리를 온몸으로 외쳤던 한 인물,
민종식(閔宗植)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오늘, 1917년 6월 26일, 그의 서거일을 맞아
다시 한 번 조용히 그 이름을 되새깁니다.
그가 살아온 길은 조국을 향한 뜨거운 심장의 기록이었습니다.
🌱 고귀한 가문에서 피어난 충절의 불꽃
민종식 선생은 1861년 3월, **경기도 여주목(현 여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명문가인 여흥 민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민영상은 조선의 정2품 관직인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입니다.
집안으로만 본다면, 민 선생은 평생을 고위직에 앉아 안온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조선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가문의 혈통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나라에 대한 충의였으니까요.
🏛️ 학문과 벼슬, 그러나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1882년, 민종식은 별시 문과에 병과 16위로 급제합니다.
그는 고종 황제로부터 직접 **사악(賜樂)**까지 받을 만큼 총애를 받았고,
이조좌랑,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등 주요 관직을 차례로 거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출세만을 쫓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언젠가 다가올 나라의 위기를 대비한 깊은 결의가 자라고 있었죠.
💔 을사늑약, 그리고 의병장의 길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민종식은 분노합니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갔습니다.
선생은 서울로 올라가 민영익, 민영휘 등 여흥 민씨 고위 인사들을 찾아
나라의 앞날을 논의했지만, 모두 손을 놓은 채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국 그는 결심합니다.
“죽어도 싸우겠다.”
그리고 고종에게 의병을 일으키라는 밀지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의병 자금을 마련합니다.
⚔️ 을사의병의 선봉에 서다
1906년 3월, 민종식은 충남 정산에서 의병을 일으킵니다.
6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홍주성을 향해 진격했고,
그는 의병의 대장으로 나서며 정식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의 의진은 일본인을 생포하고, 총과 탄환을 확보하며
남포, 서천, 결성, 공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차례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바로
1906년 5월 19일, 홍주성 전투입니다.
🏰 홍주성 전투, 불꽃처럼 타오른 의병
의병대는 1,200여 명으로 확장되었고,
민종식은 지혜롭게 성을 공략했습니다.
하수구를 통해 잠입한 두 명의 병사가 성문을 열자
의병은 일제히 성 안으로 진입해 홍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일본군은 후퇴했고,
민종식 의병은 군자금, 무기, 포로를 확보하며 짧은 승리의 깃발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일본군은 다수의 병력을 동원해 성을 포위했고
결국 5월 31일 새벽, 홍주성은 함락당하고 맙니다.
이 전투에서 의병 300여 명이 전사하고,
145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수많은 민간인이 무차별 학살당했습니다.
🛡️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삶
패주한 민종식은 다시 의병을 재결성하고
호남 지역에서 다시 봉기합니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와 일진회원의 밀고로 결국 1906년 11월 체포되고 맙니다.
그는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구원하며, 종묘사직을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교수형이 선고되었으나,
훗날 종신유배형으로 감형되어 진도에 유배됩니다.
그리고 1907년, 특사로 풀려난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1917년 6월 26일,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합니다.
🎖️ 그리고 세월 뒤에야 내려진 훈장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그의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합니다.
그리고 1974년,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마침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자의 품격을 되찾았습니다.
💬 우리가 민종식 선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 그는 귀족도 아니었고, 무장군인도 아니었습니다.
📌 그는 단지 ‘나라를 위해 칼을 든 선비’였습니다.
📌 그가 선택한 길은 가족도, 안락도, 생명조차도 뒤로한 길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진짜 영웅은
거창한 말보다 실천과 희생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민종식 선생은 바로 그랬습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조용히 역사 속에 불꽃을 새긴 사람.
🌸 오늘, 그를 기억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들
- 그분의 이름을 한 번 검색해보기
- SNS나 블로그에 오늘의 감상을 나누기
- 자녀와 함께 역사 이야기를 나누기
- 홍성, 여주, 서울 현충원 등 그의 발자취를 여행하며 느껴보기
- 그가 지켰던 ‘자주’와 ‘정의’의 가치를 마음에 새기기
✍️ 마무리하며…
“사람의 머리는 잘라도 정신은 죽지 않는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그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민종식,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짜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를 다시 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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