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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

독립운동가 임병극 선생, 대한독립운동가, 한국의 의병들, 봉오동전투 승리로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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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극 선생을 아시나요?

국가보훈처에서 2020년 6월의 인물로 임병극 선생을 선정했는데요.

선생은 봉오동 전투에 참여해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출쳐:독립기념관

 

 

출생연도 : 1885 ~ 미상

훈 격 : 건국훈장 독립장 (1995)

주요공적

  1920년 대한국민회 지휘관으로 봉오동 전투 승리

  ▷1921 ~ 1922년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대일항전 전개

  ▷1924년 중국군에 체포, 징역 15년 언도

 

임병극선생의 공적

1885 평안도에서 출생하였고 1917 고향을 떠났습니다.

북간도(北間島) 망명하여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일원으로써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대한국민회가 창설한 항일무장활동 기관인 국민회군의 2중대장에 임명되어 독립전쟁의 일선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북간도에 근거지를 둔 국민회군과 함께 독립군단들은 조금더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돈립군 연합체인 대한북로독군부를 1920년 5월 22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고는 6월 4일 독립군은 국내로 집입하여 일본군 현병 순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 후, 6월6일 대한북로독군부 주력부대가 주둔해 있는 봉오동으로 향하였습니다.

 

봉오동전투라 불리는 봉오동은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지형입니다.

안으로 들어 올수 있는 입구는 하나이고 나머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건을 갖추었기에 오늘날에도  지형의 이점을 살려 봉오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사령관의 공격 신호탄에 맞춰 우리의 의병들은 일본군을 공격했고 이병극 선생 또한 부하 독립군들을 독려하면서도 적극적인 공격을 하여 봉오동 전투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중상자와 경상자가 각각 200여명, 100여명이었고 사망자는 157명이었으나 독립군은 전사자 4명 중상자 2명으로

아주 독립군의 완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봉오동전투는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되고 이후 임병극선생은 10월 창산리 전투에도 참여해 전승을 거두었씁니다.

1921년에는  안도현에서 의용대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계속해서 일제의 기관을 기습하는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이후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기도 하고 의열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선생은 돈화와 연길을 왕래하며 지하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1924 9 14일 연길현(延吉縣) 옹성요(甕聲曜)에서 부하 다섯 명과 함께 중국군에 체포되어 일제에게 인도되었고 징역 15년을 언도받았습니다. 그 이후의 행적은 불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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