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1886.05.04~미상
민족대표48인 중 한분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3.1울동의 기획을 하고 실행에 가담하고, 학생 대표로써 서울 학생 제 2차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으셨습니다.
활동
강기덕 선생은 1886년 5월 4일에 함경남도 덕원군(이후 원산으로 행정구역 조정) 적전면 당상리 12번지에서 출생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명 중의 한 명으로써 독립선언서를 각 학교 학생들에게 배포하는 등 2차 시위(3월 5일)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일 때문에 체포되어 1년 6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강기덕 선생은 보성법률상업학교 3학년이었는데 출소 이후 고향인 원산으로 돌아온 선생은 3·1운동 정신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1924년 3월경 강기덕 선생이 운영하는 덕흥인쇄소에는 원산 보광학교의 3·1운동 5주년 기념 인쇄물을 만들어 시대정신을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강기덕 선생은 교육에도 열정을 바치고, 언론인으로써도 행보를 이어 갔습니다.
그는 1923년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민립대학설립운동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26년 1월에는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창립에 가담했습니다.
특히나 조선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강조하며, 경작제도의 문제를 개선하여 농민들의 수입증진을 위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6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40년에는 이름 있는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제에 타협하고 변절도하였지만, 강기덕은 끝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946년에는 건국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셨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습니다.
1956년 6월까지 교화소 분소에서 구금되어 있다가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될 때 안재홍, 조소앙과 함께 거기에 동원되었고, 이후에는 함경북도 방명으로 이주하였다는 설 이외에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아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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