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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독립운동가 잊지말아야할 역사, 의병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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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독일에서 유럽최초의 한인유학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를 결성하고 일제강점기 당시 독일에서 외교 독립운동을 펼친 황진남(2019년 애족장), 이의경(1990년 애족장), 김갑수(1993년 건국포장) 지사를  2024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들은 각종 선전물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국제회의를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와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었을때  프랑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도가 높아 유학생들의 대부분은 상하이에서 프랑스 마르세이유항으로 향하는 배를 통해 들어왔으며 서영해와 같이 프랑스에 남거나 유럽 각지로 흩어졌다. 한인 학생들은 면학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임시정부의 일을 도우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유럽 최초의 한인유학생 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가 결성되어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고 외교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왼쪽부터 황진남, 이의경, 김갑수

 

 

황진남: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황진남선생은 1897년 함흥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05년 아버지 황명선을 따라 하와이로 이주하게됩니다.

1919년 3월 국내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접하고는 선생은 캘리포니아대학을 자퇴한 뒤 캘리포니아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독립운동을 위한 유세를 펼치게 됩니다.

1919년 3월 15일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는 전체대표회를 열고 안창호를 재미한인의 대표로 선출하고 대한인국민회는 황진남과 정인과를 통신원으로 임명하여 안창호를 수행하는 일로 상해에 파견하였습니다.

 

1919년 5월 상해에 도착한 안창호는 임시정부 내무총장으로 선임되었고 황진남과 정인과는 미국령 대의사로 선출되면서 황진남은 안창호의 비서로서 그를 도왔으며 영문에 능숙하여 중국 현지 영자신문 등에 일제의 조선통치 실상을 알리는 영자 선전문을 작성하였습니다. 

황진남은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참사로 임명됐으며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대학에서 유학 하게 됩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의 트집으로 무고한 조선인들이 대량 학살되는 만행이 자행되자 진상을 조사하고,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전단을 제작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항일의지를 대외에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재독한인대회가 개최되자 ‘한국에서 일본의 유혈통치’라는 전단을 배포하며 한국 독립 지지를 호소하였습니다.

 

그후 선생은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였는데

2차 대전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부인과 함께 1938년 9월 귀국하여 고향인 함흥에서 살았습니다.

 

1944년에 신설된 함흥의학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해방이 되자 황진남은 서울로 이주하여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동맹에 가입하고 비서로서 보좌하였습니다.

선생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서 외무국방위원장에 선출되어 일하다가

1948년 3월 18일 입법의원직을 사임 후 정치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이후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번역과 통역 일을 하였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육군성 소속으로 일본 도쿄로 가서 일하다 1970년 5월 13일 사망하셨습니다.  

 

이의경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이의경 선생은 이미륵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1899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하며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이라는 단체의 편집부장을 하며

‘국치기념경고문’이라는 글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제에 수배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이후 뮌헨대학에서 유학을 하게 됩니다.

뭰헨대학에서 철학과 같은 학문을 공부하며 이극로, 황우일, 김법린 등과 벨기에 븨뤼셀에서 개최된

세계피압박민족결의대회에 1927년 2월10일~14일까지 학국 대표단으로 참가해 결의문이 채택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28년 졸업 후 이의경선생은 잡지에 투고,기고 및 번역 등으로 생계를 꾸렸고,

이때 집필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역작으로 1946년 출판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48년부터는 뮌헨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한국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길을 걸었고, 한국전쟁을 앞둔 1950년 3월 20일 위암으로 타계하시게 됩니다.

김갑수 993년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


김갑수 선생은 1915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회를 이끌며 항일 운동에 투신했으며, 1921년 상해임시정부에서 파송하는 유학생 16명을 인솔하여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유학 중 ‘유덕고려학우회’의 첫 간사장을 맡았고, 기관지인 ‘회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재독한인의 동향과 국내외의 소식을 알렸습니다.

 

보훈부는 세 지사의 공훈에 대해 “독립운동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독일에서 국제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홍보물을 배포하고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알린 재독한인학생들의 활동은 해외 독립운동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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