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를 되짚다 보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민족의 자주와 교육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언론과 교육의 힘으로 조국의 독립을 꿈꾼 백일규 선생의 삶과 뜻을 되새겨보려 합니다.
그의 이름은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밑거름에는 그와 같은 이들의 땀이 깃들어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기억하자’는 말처럼, 오늘 이 글이 백일규 선생을 기억하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선 말기, 유년 시절과 유학길
백일규(白一圭) 선생은 1880년 3월 11일 평안남도 증산군 성도면 오화리에서 태어났다 다. 당시 조선은 점차 국권을 빼앗기며 일제의 영향력이 짙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신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대한제국의 현실을 깊이 고민하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더 넓은 세상에서 조국의 길을 모색하고자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1905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이민 노동자들과 함께 미주 땅을 밟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헤이스팅스 대학(Hastings College)**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민족의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신한민보> 기자에서 사장까지 – 언론으로 외친 독립의 목소리
백일규 선생의 이름을 빼놓고는 재미 한인 언론사의 역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한인 신문인 **《신한민보》**의 기자로 활동하며, 해외 동포사회에 조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산하에서 활동하며, 《신한민보》의 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언론은 단순한 소식 전달을 넘어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한인 사회의 결속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의 필치는 절절했고, 때로는 날카로웠습니다. 당시 《신한민보》는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을 발 빠르게 전달하고, 일본의 침략 야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매체로 기능했습니다. 그는 종종 미국 정부와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며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으로 민족을 일으키다 – 조선어 교육의 중요성
언론 활동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던 선생은 조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글학교를 세우고 조선어 교재를 직접 집필하며 어린 동포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나라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그는 한인 청소년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전하며 정신적 계승을 이루려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 교육이 아닌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저항의 방식이었습니다.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
안타깝게도 백일규 선생은 해방을 4년 앞둔 194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끝까지 미국 내 한인 사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조국의 광복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재미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주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100년 후, 다시 부르는 이름 ‘백일규’
대한민국 정부는 백일규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모르고 지나칩니다. SNS에 ‘#백일규’를 검색해보면 언급조차 드물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주, 더 분명하게 이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백일규 선생은 독립운동가입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 그의 삶을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그 문장에서부터 기억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FAQ: 백일규 선생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1. 백일규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A1. 그는 미국에서 《신한민보》 기자 및 사장으로 활동하며, 언론을 통해 조선 독립을 외쳤고, 한글 교육과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도 앞장섰습니다.
Q2.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활동했나요?
A2. 평안남도 증산군 성도면 오화리에서 태어나,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서 활동했습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언론 및 교육 운동을 펼쳤습니다.
Q3. 백일규 선생은 어떤 훈장을 받았나요?
A3.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기억은 또 다른 독립운동이다
오늘날 우리는 SNS와 유튜브로 정보를 얻고, 수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는 일,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일은 매우 소중한 ‘현대의 독립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백일규 선생. 이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줄 차례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백일규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오늘입니다.
함께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공유해주세요.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다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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