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03.10 안창호 선생의 서거 날 입니다.

"나라를 위한 한마음, 안창호 선생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고 숙연해지는 인물. 바로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입니다.
그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사상가이자 교육가였으며, 무엇보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온몸을 바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오늘은 안창호 선생이 서거하신 날입니다.
한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을 돌아보며, 선생의 뜨거운 신념과 희생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밝은 미래를 향한 꿈, 그 시작"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안창호 선생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학문을 향한 갈망과 나라를 향한 깊은 애정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그는 유교적 전통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개화사상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한성으로 향했습니다.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다"
1902년, 안창호 선생은 신문명의 바람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서양의 교육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조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변화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돌아와 협동과 교육을 통한 근대화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1907년 신민회를 조직했습니다. 신민회는 단순한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실질적 기반을 닦고, 인재를 양성하며, 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의 신념은 뚜렷했습니다. 총칼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으며, 조선인 스스로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탄압은 점점 거세졌고, 신민회는 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교육으로 희망을 심다"
안창호 선생이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바로 교육입니다. 그는 교육이야말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단순한 학문이 아닌, 민족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교육이었습니다.
또한, 흥사단을 창립하여 청년들에게 자립심과 애국심을 심어주었습니다. 흥사단의 정신은 지금도 남아 우리의 마음속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꿈꾸었던 '밝은 미래'는 바로 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수차례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했던 것은 1932년 체포 당시였습니다.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결코 조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념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그의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고문과 수감 생활로 인해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습니다. 끝내 1938년 3월 10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렬하게 살아남아 후대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도산 안창호"
그의 삶은 단순한 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우리 모두가 가슴에 품어야 할 신념입니다.
안창호 선생은 단순한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상가였고, 교육자였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꿈은 단순한 독립이 아니었습니다. 조국이 강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되새길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창호 선생이 꿈꾸었던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오늘, 안창호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날. 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뜻을 잊지 않는 한, 그의 희망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안창호 선생의 삶은 영원한 등불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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