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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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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흥식 선생-요즘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역사 독립운동가-최흥식 선생선생은 대련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고, 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옥고 중 옥사로 추청되고 있습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신 선생은 가정형편 상 학업을 중단하고 각종 행상을 하시며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20세 되던 해 3천만 백성을 고통과 압박에서 구해낸다면 죽음도 괜찮다는 근 포부로 중국 망명을결심하셨습니다. 선생은 상해 도착후 '윤봉길'의사가 취직했던 종품공사에 근무하며 한인애국단과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중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게됩니다.그 지령은1932년 5월26일~30일까지 리튼 조사단이 만주 대련에서 현지 조사 일정이 있는 만큼,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련에 있는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추철도 총재등 일제 고위 관료를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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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법륜스님은 어떤분? 법륜스님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운동가입니다. 제3세계를 지원하는 구호 활동가이며, 인류의 문명 전환을 실현해가는 사상가이자 깨어있는 선승으로, 보살의 삶을 서원한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세웠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수행을 바탕으로 한발 더 나아가 사회 변화를 도모해 왔으며, 이러한 정신은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와 병원을 열고, 이어서 굶주리는 북한 동포 돕기 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2002년부터 즉문즉설(卽問卽說)을 통해 세대를 넘나드는 인생의 멘토가 되어,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출처:정토회) 법륜스님 즉문즉설은? 듣고 있자면 법륜스님의 지혜와 통찰력에 놀랍니다.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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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2월의 독립운동가/윤덕보선생/잊지말아야할역사/우리나라만세 윤덕복 선생은 함경남도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이주하여 대한독립군비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원식 선생과 같은 시기 같은 조직에서 활동 하셨습니다. 1922년, 대한광정던에서 총무장으로 단체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조직이 확대 개편된 이후에는 대한광정단의 단장이 되었습니다. 1924년에는 정의부 행정위원으로 선철되었고 외교위장장등으로도 활약하셨습니다. 사망하신 시점은 미상입니다. 2024.02.16 - [인물] - 독립운동가/김원식선생/잊지말아야할역사/우리의역사/의병/기억하자 독립운동가/김원식선생/잊지말아야할역사/우리의역사/의병/기억하자 독립운동가 김원식 선생. 1889.08.27~1940.01.10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동북면군사연락 위원,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길림전만선 반제동맹대회 집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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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김원식선생/잊지말아야할역사/우리의역사/의병/기억하자 독립운동가 김원식 선생. 1889.08.27~1940.01.10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동북면군사연락 위원,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길림전만선 반제동맹대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셨던 독립운동가. 선생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인해 나라를 빼앗긴 이들은 1906년 신민회라는 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을 꿈꾸었습니다. 1909년 신민회의 만주 이주계획에 따라 신민회 주요 인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곳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위한 근거지 마련과 조직 확대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 중대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선생은 안동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뒤 만주 봉천성으로 피신하게되었습니다. 더이상 평화로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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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잊지말아야할역사/강근호선생/대한민국독립운동 주요 활동: 선생은 1888년에 태어나 고향에서 보통학교까지 마쳤습니다. 1916년 함흥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반일학생사건'에 연류된 혐의로 경찰수배를 받자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지린성등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그해 5월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장독립운동 조직인 북로군정서의 사관양성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제 1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고, 부대원들과 함께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의 자유시도 이동하였습니다. 러시아에서 1922년 반공투쟁을 벌여 러시아에서 옥고를 1년 치르게 되었는데 옥고를 치르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영신학교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을 가르치고 1943년에는 애국동지회 청년군사훈련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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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권오설독립운동가/독립열사/잊지말아야할역사 1987.11.25~1930.04.17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중퇴를 반복하여야 했습니다. 전라남도청의 고용원으로 근무하던중 3.1운동에 참가하게 되고 그 이후 고향인 안동에서 학습강습소를 조직하였습니다. 권오설 선생은 특히나 교육운동에 힘을 쏟았고, 농민운동도 전개하였습니다. 선생은 순종황제 승하 직후인 임시상해부 인사들과 함께 6.10만세운동의 모든 계획과 추진을 주도하셨으며, 만세시위 때 사용하기 위한 '격고문'과 그 밖의 전단 등을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어 직역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중 출옥을 며칠앞둔 날 고문으로 인해 순국하셨습니다. 글로만 읽는데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권오설 선생이 태어난 경상북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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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씨독립운동가/의병활동/한국의병/기억해야할인물 박가우선생 전북 순창군에서 최산흥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었습니다. 묘소위치도 파악이 되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 의병이셨던 박가우 선생은 다행히도 2015년에 대통령표창 추서하였습니다. 박갑만선생 1922.05.08~1956.09.08 선생은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1945년 5월12일 친형에게 "천황폐하는 어디 있나?도망가지 않고 내지에 있는지 조선에 있는지 모르겠다."라면 천황에 대한 발언을 하였다고 불경죄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혐으로 잡혀들어갔습니다. 이후 8월31일 공소기각판경을 받고 나오긴했지만 짧은 생을 살다 가셨습니다. 박갑쇠선생 1907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본인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임실에서 의병을 일으켜 창의동맹단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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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오윤환 선생(1894년3월16일~1963년 3월27일) 오윤환 선생은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다고 합니다.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0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함경남도 함흥 대표의원 및 군무부원으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1921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한인학교인 백산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그 일에 열정을 바쳤습니다. 나는 과연 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처럼 용기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나는 아침이네요. 결코 잊어서는 안될 독립운동가분들 전해봅니다. 2024.01.03 - [인물] - 독립운동가-000열사,000의사 독립운동가-000열사,000의사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면 그냥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리고는 더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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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가재연 1923년 4월8일 충남에서 태어나 1936년 인천 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원래 한국인 학교였으나 일본인 학교인 인천남공립상업학교와 합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교장과 교사들이 해임되거나 퇴임,전출되었고 학생들또한 집단 퇴학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로인해 크고작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고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한국학생들에게 위압적이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며 일본의 민족의식을 심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애국심이 더 크게 생겨났고 학국인학생친목회를 조직하여 서로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친목회 회원들 중 일부졸업생들은 일본에 유학중이었는데 재학생들과는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물론 편지는 학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를 하는 내용이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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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지청천 장군-(1888.02.15~1957.01.15)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전두지휘 하신 분입니다. 장군은 배재학당과 한국 문과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근대적인 군사지식을 습득한 군사인재였습니다. 3.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여, 셀수도 없이 많은 독립군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후 일제의 독립군 말살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일본군과의 교전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을 창설에 참여하여 광복군의 총사령관을 맡게 되면서 주역으로 활동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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