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4) 썸네일형 리스트형 허위 — 의병은 ‘분노’가 아니라 ‘사상’이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허위 — 의병은 ‘분노’가 아니라 ‘사상’이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의병을 떠올리면 흔히 이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분노한 백성, 갑작스러운 봉기, 그리고 패배. 그러나 이 이미지는 의병의 전부가 아닙니다.오늘 소개할 왕산 허위 선생은, 의병을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상과 원칙에 기초한 항전으로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엄격했고, 가장 고집스러웠으며, 그래서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의병장이었습니다. 🇰🇷한눈에 보기· 인물: 허위(許蔿, 1855~1908), 호 왕산· 구분: 유학자 · 의병장 · 13도 창의군 핵심 지도자· 특징: 의병을 ‘도덕적·사상적 전쟁’으로 규정한 인물1) 허위는 왜 ‘의병의 사상가’로 불릴까허위는 전형적인 무장 투사로 출발하지 않았습.. 📚 인물사전 🗓 기념일 캘린더 이강년 — ‘의병은 패배했다’는 말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 🏠 메인으로 🗓 기념일 캘린더이강년 — ‘의병은 패배했다’는 말에 끝까지 저항한 사람의병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런 말이 따라옵니다. “용감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 문장은 편리하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의병을 ‘실패한 선택’으로만 남겨두기 때문입니다.오늘 소개할 이강년 선생은 이 문장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패배가 예정된 싸움 속에서도, 의병이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한눈에 보기· 인물: 이강년(李康秊, 1858~1908)· 구분: 제천의병 지도자, 후기 의병장· 핵심: 장기 항전, 지역 연합, 조직적 의병 투쟁1) 나라가 무너지는 속도를 체감한 세대이강년은 조선 말기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였습니다. 개항 이후 조선의 주권은 빠르게 잠.. 📚 인물사전 🗓 기념일 캘린더 이준 — 12월 18일, 헤이그로 간 이유 이준 — 12월 18일, 헤이그로 간 이유1907년 여름, 대한제국의 주권이 침탈되는 현장을 국제법의 언어로 고발하기 위해 이준·이상설·이위종이 비밀리에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19세기 말 법률가이자 교육가였던 이준의 12월 18일 탄생을 맞아, 그 여정의 의미를 다시 읽습니다. ✉️한눈에 보기· 키워드: 1907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 국제법·외교전, 주권 침탈 고발· 생애: 1859.12.18 출생 → 검사·판사·교육가 → 특사 파견 → 헤이그에서 순국(1907.7.14)· 함께 읽기: 신채호 · 이회영 · 박열 · 박차정‘을사늑약’ 이후, 국제사회로1905년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되었습니다. 황제 고종은 국제회의에서 그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비밀리에 특사를 보냅니다. 이준 일.. 📚 인물사전 🗓 기념일 캘린더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 의미, 유래,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할 일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 의미, 유래,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할 일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와 유래, 오늘 우리가 실천할 작은 방법까지 한 페이지에 정리했습니다.한눈에 보기언제? 매년 11월 17일왜 이날?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임시정부가 1939년 제정무엇을 기리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희생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위훈법적 지위? 1997년 법정기념일 제정1) ‘순국선열’은 누구를 말하나요?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의사·열사’라고 부르는 분들 다수가 여기에 포함됩니다.2) 왜 하필 11월 17일인가요?을사늑약(1905.. 📚 인물사전 🗓 기념일 캘린더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