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논란, 확인된 기록은 어디까지일까?
이 글은 배우 하영 개인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2026년 8월 26일까지 공개된 언론 보도, 역사 연구 및 공공 기록을 바탕으로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살펴보는 역사 기록형 글입니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주장, 그리고 역사적 평가를 구분해 적었습니다.

한 방송에서 시작된 질문
2026년 8월, 배우 하영의 이름이 뜻밖의 이유로 크게 검색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하영은 가족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의사로 활동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증조부 역시 근대 의학을 공부한 의사였다는 가족사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 배우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방송 이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의사 안상호(安商浩, 1872~1927)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되는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다시 주목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빠르게 ‘친일파 후손’, ‘친일 재산’, ‘친일 집안’ 같은 표현이 퍼졌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감정보다 먼저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안상호라는 사람은 누구였는지, 대정친목회는 어떤 단체였는지, 그의 이름이 왜 친일인명사전에는 없는지, 그리고 최근 거론된 2,700평 토지는 정말 친일재산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안상호는 누구였을까?
안상호는 1872년에 태어나 1927년에 세상을 떠난 근대 의사입니다.
그의 생애에서 먼저 확인되는 것은 의학 분야에서의 활동입니다.
안상호는 대한제국 시기 일본에서 근대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귀국 후에는 의료 활동을 이어갔고 왕실 진료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부분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라 실제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1920년 순종실록부록에는 순종의 발이 불편해 “촉탁의 안상호가 입진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날에도 다시 안상호가 입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안상호가 당시 왕실 진료에 참여했던 의사였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 직업적인 성취와 정치·사회적 행적은 별개로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문제의 핵심, 대정친목회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입니다.
하영의 소속사도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자료를 다시 확인한 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대정친목회는 어떤 단체였을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단체 이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체가 무엇을 목적으로 활동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연구자가 2007년 발표한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 연구에 따르면, 대정친목회는 1916년 창립된 단체였습니다.
경성에서 활동하던 경제인, 관료, 귀족,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 당시 사회의 여러 유력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겉으로는 친목과 사교를 표방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서 확인되는 핵심 목적은 ‘내선융화’였습니다.
내선융화라는 표현은 오늘날 들으면 단순히 조선인과 일본인이 서로 잘 지내자는 뜻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정치적 맥락에서는 전혀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가 조선 식민통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조선인에게 일본 제국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논리와 깊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정친목회는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협조하고, 조선인과 일본인 유력 인사들의 교류를 통해 내선융화를 추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은 정치적인 방향으로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일본 제국의회에 조선인 의원을 선출하자는 참정권 운동을 추진했고, 조선을 일본과 별개의 나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의 일부로 보는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후기에는 일본의 만주 침략을 옹호하고 창씨개명을 환영하는 활동까지 이어졌다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역사 연구에서 대정친목회를 대표적인 내선융화·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하는 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상호는 ‘친일파’인가?
여기서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안상호는 공식적인 친일파였던 것인가?”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현재 확인되는 자료에서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존재합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논란과 관련해 그의 친일 행적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안상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의 수록 인물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또 과거 정부가 발표한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현재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두 사실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기록은 확인됩니다.
✔ 대정친목회는 역사 연구에서 내선융화·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됩니다.
✔ 하지만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자나 과거 정부의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안상호를 아무 설명 없이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등 친일 행적으로 평가되는 기록이 확인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재 자료에 가장 충실합니다.
역사는 단어 하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기록보다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역사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안양시는 왜 안상호를 ‘독립운동가’로 소개했을까?
이번 논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안양시가 과거 안상호를 독립운동가로 소개한 게시물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 광복 75주년을 맞아 안양시 시민기자단이 작성한 글에서 안상호는 안양 지역 독립운동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2026년 이번 논란이 불거진 뒤 안양시는 해당 글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안양시 측은 당시 글이 작성될 때에는 현재 논란이 된 친일 관련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꽤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가 역사 인물을 어떻게 조사하고, 어떤 기준으로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 인사’라는 이름을 붙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행적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초기의 활동과 후기의 선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자료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기존 평가가 수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연구에서는 계속 새로운 자료가 필요하고, 공공기관 역시 기존 콘텐츠를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2,700평 토지는 ‘친일재산’일까?
최근 논란은 안상호의 행적을 넘어 재산 문제까지 확대됐습니다.
2026년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경기 군포 일대에 약 2,700평 규모의 토지를 보유했던 기록이 거론됐습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해당 재산의 취득 과정과 친일 행위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과, 그 토지가 친일행위의 대가로 얻어진 재산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친일재산’으로 국가가 환수하려면 법률상 정해진 요건과 재산 취득 과정에 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26일 현재, 안상호의 해당 토지가 법적으로 친일재산이라고 확정됐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현재 배우 하영이나 그의 가족이 그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해당 재산을 직접 상속받았다는 사실 역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700평 토지 보유 기록 → 확인·조사 요구가 제기됨
친일 행위 대가로 취득 → 아직 확정되지 않음
현재 하영 가족 재산과 직접 연결 → 현재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음
인터넷에서는 세 문장이 너무 쉽게 하나로 합쳐집니다.
하지만 세 문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려면 그 선을 지켜야 합니다.
하영은 왜 사과했을까?
이번 논란에서 배우 하영 본인의 대응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소속사는 처음에는 증조부의 친일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그러나 대정친목회 평의원 기록 등을 확인한 뒤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입장을 냈다는 취지로 사과했습니다.
이어 하영도 8월 12일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통해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증조부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이야기했던 점을 반성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증조부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된 뒤 후손으로서 사죄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조상의 행위를 이유로 후손에게 동일한 행위의 책임을 자동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영이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증조부의 선택에 관여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배우 하영 개인을 증조부의 행적과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신중해야 합니다.
다만 자신이 공개적으로 소개했던 가족사의 내용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영은 공개 사과와 함께 가족의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후의 평가는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정말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연예인의 집안 논란’으로만 소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계기라고 봅니다.
한쪽에는 자신의 삶을 내놓으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의병으로 싸운 사람도 있었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고문을 견딘 사람도 있었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식민지 체제에 협조하거나 일제의 통치 논리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선택은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할수록 저는 ‘그 시대라면 누구나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
역사는 후손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의 위험도 있습니다.
친일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이유로 그 후손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역사 공부의 목적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기록을 찾는 이유는 누군가를 혈통으로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그 선택이 사회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안상호의 행적은 안상호의 기록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하영의 말과 행동은 하영의 것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둘을 구분하면서도 역사를 잊지 않는 것.
저는 그것이 가장 성숙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질문, 친일재산 조사는 어떻게 될까?
이번 논란은 아직 완전히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문제를 다시 조사하기 위한 제도 변화가 추진되면서 안상호 관련 토지 역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서 결과를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조사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사람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할지, 안상호의 활동을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로 판단할지, 해당 토지의 취득 과정에서 친일 행위와의 대가 관계가 확인될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도 향후 공식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면 그 내용을 반영해 업데이트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기록은 한 번 쓰고 끝나는 문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고 공식 판단이 내려진다면 기존의 평가 역시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기록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읽으면 이번 논란이 더 다르게 보입니다
직접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면
오늘의 한 문장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후손을 미워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기록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배우는 일입니다.
※ 2026년 8월 26일 공개 자료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향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공식 조사나 새로운 사료가 공개될 경우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하겠습니다.
```
'역사의현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홍범도 vs 김좌진 비교” (0) | 2026.03.27 |
|---|